Small Cute Blue Gray Pointer Russell's teapot
망량(魍魎) 一

 
 
 

 

 

 

 

 

 


 
한낱 인간이 완성된 그것을 가둬 놓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러니 그것이 아주 작고 허약할 때,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자유를 걸고, 그것의 뿔을 탐하면, 결국 그 아이가 뿔을 삼키지 않으리.
 
 

 

 

 

 

 

 

 

 

 

 

 

 

 

 

 

 

 

 

 


 
"그러니 겨울아, 잘 기억하거라. 그것이 무슨 말을 하든, 절대 그것의 속박을 풀어선 안 된다."
 
"넌 그저 이렇게만 말하는 게야."
   

 

 

 

 

 

 

 

 

 

 

 

 

 

 

 

 

"망량, ─"

 
  

 
  


 

 

 

 



그는 좀 별난 구석이 있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가의 흔한 그것이라 칭했지만, 제가 느끼기엔 조금 더 별난 무언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나 물어도 돼요?"

별난 사람에겐 별나게 질문한다.

목적 없이 경찰서를 찾는 사람은 없다. 그것도 유명인이라면 더욱 그랬다. 민중의 지팡이라곤 하나, 그곳에 행차하는 이들이 반쯤 부식된 존재들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그를 뒤로한 채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후덥지근한 밤공기에 후, 숨을 뱉곤 한쪽 팔에 걸쳐둔 겉옷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낸다.

하나를 입에 물고, 쓰윽 건네보니 색이 바랜 눈이 그것을 흘깃 보곤 시선을 돌렸다.

"안 펴요."

"펴서 좋을 게 없긴 하죠."

차마 비흡연자 옆에서 불을 붙이지는 못해서, 그냥 필터만 씹어댔다.

정말 별난 사람이지.

쉽게 열지 않는 다문 입이며,
조소를 담을 때 빼고는 무채색의 그림마냥 경직된 눈매 하며,
애초에 사람을 올곧이 담지 않는 눈동자 같은 그런 것이.

형사에겐 익숙하다 못해 징글징글한 분노어린 태도는 응당 이해 갈만한 부분이었으나, 왠지.

"갈게요."

한참을 침묵하다 뜬금없이 내뱉는,

고개를 돌려 선명히 저를 응시하며,

그러면서도 눈을 맞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그가 턱 하니 자신의 핸드폰을 내민다.

화면은 켜져 있었다.

'아버지가 유품으로 너한테 남긴 게 있다. 가지고 가.'


참 이상하지.

왠지 모를 사람의 숨소리란 건.


"연 끊은 지는 이미 오래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무례하다 싶을 말도 단조롭게 내뱉었다.


그는 그저 조소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그해의 여름은 아주 치가 떨리게 뜨거워서,

기묘하고 요사롭기엔 아주 좋은 시기였더랬다.








 

 

 

 

 

 


그는, 그러니까 류나리는 꽤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렇다고 흔한 예술가는 아니다.

 

표현하자면, 요즘 사람들은 몰라도 같은 서에 근무하는 중년 경장은 류나리를 개천의 용이라 불렀다. 유학경력은커녕 그 흔한 대학 졸업장도 없는, 출신조차 지방 저 끝 폐쇄적인 마을로 정리되는 개천 중의 개천.

 

까다로운 예술계에 절대 정착하지 못할 그를 불러낸 건 역시 이 세대의 걸맞은 SNS였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보도블럭 위에서, 그 흔한 캐논을 연주하는 영상이 독특한 분위기와 선율을 빌미로 이곳저곳 흘러들었다. 그 영상을 보고 뭔가 좀 달랐는지 보석을 찾았다 말하던 세계적인 거장이 결국 그를 키웠다는 모양이다.

 

지금은 오케스트라에서 악장 자리를 다툴 만큼 거대해졌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고향이라더니.

 

 

마리는 사실 이 수사에 비관적인 쪽이었다.

 

누가 봐도 복잡하고, 윗분들과 척질지도 모르는 수사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건 오히려 그녀의 특기였다. 가만히 숨을 죽이다 제 주인을 무는 사냥개마냥. 그런 그녀의 입버릇을 마음에 들어 한 청장이 아니라면, 수백 번 좌천당했을 사람이다.

 

흔하다면 흔한 여자아이의 잇따른 실종 사건이었다. 대개 부모의 관심이 옅은 아이가, 때로는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가, 전국의 이름도 제대로 붙여지지 않은 아이가 사라진다.

 

너무도 흔한 일이라, 그리고 또 알려고 하는 이도 없는 일이라, 여느 때처럼 아무도 모른 채 일어났을 일이 한 살인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냥용 총을 가진 50대 남자였다. 산골로 유명한 마을 변두리, 죽은 남자아이를 묻다가 순경에게 발견됐다고 들었다. 특이한 건 그렇게 경찰에게 발견된 직후 그가 보인 행동이었다.

 

거의 그런 경우에는 도망치는 놈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정말 어둑한 산골이니 그 순경도 죽여 묻는 놈도 한가득이고. 원래 사람 죽이는 게 그렇지 않은가. 처음이 가장 어려운 일.

 

그 남자는 그저 입을 다물곤 순경을 바라보다 삽을 내려놓고, 땅바닥에 놓인 총을 순경 쪽으로 던지곤 말한다.

 

'역시 오늘 죽으려나 보지.'

 

그는 순순히 서로 동행했고, 범행을 인정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알고 있었지. 그야 그분께서 정확히 오늘을 짚어 그러셨거든. 난 솔직히 그분의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의심했어. 오늘은 여자애를 데리고 가는 날이었거든. 아직 두 살이라고 들었는데. 이미 세 시간은 지났으니⋯. 그냥 버리고 갔으려나 몰라.'

 

서는 발칵 뒤집혔다. 더 물어도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하니, 이게 유괴 사건의 전초였는지.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은 말을 보아, 연쇄인 건지. 정말 웃긴 건, 그날 11시 20분경 남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원래 심장 쪽 기저질환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을 서류로 읽던 마리는 결국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뱉는 말과 행동. 그냥 모든 것이 기이했다. 그다음 날 산 아랫마을에서 발견된 두 살짜리 여자아이도 그랬다.

 

아이는 그저 엉엉 울며 모른다고만 답했다. 당연하다. 두 살짜리가 알면 뭘 안다고. 근데도 자기가 버림받은 건 아는 것 같았다. 입맛이 썼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처럼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이에 산이 있더라도, 산 윗마을을 과하게 모른 척했다. 몰라요. 거의 안 마주쳐요.

 

경찰 쪽에서는 수상한 낌새를 느꼈고,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주일 만에 엎어졌다. 그렇게 묻힐 사건이었다.

 

3년이 지나고, 마리가 근무하는 서울 송파 경찰서에 무턱대고 들어온 여자가 아니었다면. 수사를 나가던 마리의 팔을 붙잡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은 몰골을 하고.

 

뭐라고 했더라. 내 아이를 팔았다고 했나? 말기 암에 걸린 여동생을 살리고자, 아이를 팔았다고 했던 것 같다. 여자아이. 남편 없이 낳은, 결국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이름 없는 아이는 지금 어디로 갔나.

 

 

아무 서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엎어졌던 것도, 받아주지 않는 것도.

 

그래서 마리는 그 방법이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거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비관적이라고 내뱉으면서도.

 

염치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한참 전 덮인 사건 파일에 적힌 번호였다.

 

'류나리'

 

그 사건 당시,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산 지 10년이 넘은 걸 보아 관련 없다고 판단된 류나리.

기묘한 태도를 보인, 한 남자아이를 죽이고, 한 여자아이를 사려던 그의 아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

 

윗분들은 도와줄 생각이 없고, 워낙 폐쇄적이라 외부인은 아예 받지 않는다는 그 마을에 함께 가달라는 말을 듣곤 그저 웃기다는 듯 조소했다.

 

 

대충 안전벨트를 풀고 차 뒷자리를 정리하던 중, 덜컥이며 문이 열린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옆자리에 올라탔다.

 

"주소 찍어도 잘 안 나올 거예요. 여기까지 가면 길 알려드릴게요."

 

서에서는 마리가 해외로 장기 여행을 떠나는 줄 안다. 그도 대충 그런 식의 변명을 하고 왔으리라. 오늘 아침 그가 오랜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는 기사를 봤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물어도 됩니까?"

 

참 이상하게도, 그의 의안은 한쪽뿐인데 어느 쪽도 마주치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말했잖아요."

 

그는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너무 오래 버려둬서라고."

 

 

 

 

 

 

 

 

 

 

 

 

 

 

 

 

 

 

할머니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앞만 쳐다봤다.

제 아비 손으로 눈 하나를 잃은 류나리는 그런 할머니를 올려다본다.

 

거즈든 반창고든, 이리저리 덧댄 눈 위를 만지작거리다가 물었다.

 

"망량이 뭐야?"

 

할머니는 눈 위를 서성이는 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도깨비."

 

하나 남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보육원이라 적힌 문패가 익히 들어와서 그런가, 제법 알 것 같아서 주름진 그녀의 손만 꽉 쥐었다.

 

"나랑 닮았어?"

 

할머니는 그제야 나리의 어깨를 움켜쥔다. 몸을 숙이곤 눈을 맞춘다. 엄한 표정으로 작게 말한다.

 

"그것과 대화해서는 안 돼. 그래서 그런 것이야. 남자아이는 애저녁에 내보냈어야 했어. 네 어미, 아비가 너를 숨기고자 했으니 이렇게 된 거다."

 

 

 

아가. 망량은 내기를 좋아하나, 내기는 어쩔 수 없는 도박이지. 그러니 우린 거래를 하는 거야.

하지만 기억하거라. 어린 것을 잡아놓고 억지로 행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항상 네게 불리한 거래를 할 것이란 걸.

 

 

 

애 티를 벗으면 돌아와도 좋다.

네가 올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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