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Cute Blue Gray Pointer Russell's teapot
갑진�전

 

 

 

 

 

 

 

 

 

 

 

 

 

인간은 항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나무꾼은 멍청하기 짝이 없고, 파렴치한 절도범이건만 착하다고들 하지.

애초에 사슴도, 사냥꾼도 아니었다는 건 알까?

 

그날의 선녀는(사실 아니지만) 안 그래도 성격 나쁜 자였으니.

 

푸른 용의 머리를 화살로 뚫고, 바다의 반절을 삼킨 걸 무슨 동화마냥 아름다운 척 꾸며 읊어대는 꼴이란.

 

 

아니, 중요치 않고. 그러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거다.

 

 

 

구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위에서 내려친 번개가 제 바로 앞을 뚫고 번쩍인다. 때에 맞춘 거센 바람에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태연한 그 낯짝은 옥황(玉皇)이 가장 노하는 그것이기에.

 

 

 

"똑똑히 기억하거라!"

 

 

귀청을 터뜨릴 듯 울리는 고함과,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게 하는 기이한 압박감.

 

으레 선녀가 그렇듯, 딱히 인간이 붙여준 이름이 없는 그 직급도 죄를 짓고 지상으로 쫓겨날 때가 있다.

 

 

 

"나의 뜻을 이은 청룡을 해한 죄, 네놈이 놓친 사자의 목숨으로 면할 테니!"

 

 

 

 

 

 

새로운 신이 눈을 뜬 서기 1년,

옥황의 핏줄이 지상으로 졌으나.

 

 

 

참혹한 분노도 여린 사랑으로 포장하는 인간들이, 아직 선녀라 부르면서도 남자가 있는 것은 몰라 이제 그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꼬.

 

이건 갑진(甲辰)년의 사자(獅子), 를 쏘지 못한 사냥꾼이자 �의 설화로다.

 

 

 

 


갑옷 별이름  전할  

갑진�전


 

 

 

 

 

 

 

 

 

 

 

 

 

 

"떨어뜨려서."

 

씨익 웃음 짓는 중간중간, 그 찬란한 색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에 반짝인다.

 

 

안식을 찾기에 너무도 길었던 시간 동안, 찾지 않았던 네가 선뜻 나타났을 때.

 

그것은 하필이면 푸른 용의 해였으니.

 

"왜 다시,"

 

"응?"

 

내민 손에 올려진 책갈피는 터무니없이도 나의 것이 아니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날 찾아왔어?"

 

살짝 끝이 치켜 올라간 눈을 깜빡, 깜빡.

너는 그냥 웃었다.

 

"주고 싶었어."

 

더 이상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너를, 내가 악을 쓰고 붙잡는다면,

너는 내가 아닌 모두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멈춰 서겠지.

 

손을 뻗어 쥐었다.

 

옥황의 이름 없는 그것도, 존재를 빼앗긴 옥황의 사자도, 돌고 돌아 지상의 대학에서 마주치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다.

 

이제 너는 더 이상 사자도, 나의 벗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였다.

 

 

 

 

 

 

 

리온은 천상에서 쫓겨난 뒤로, 아주 오랜 기간 인간처럼 살아왔다.

 

그건 조금 드문 일이다.

 

아무리 지상으로 유배당했다고 해도, 천상의 것들은 도통 인간과 어울리지 못했다. 존재를 숨기고 그저 취할 것만 취한대도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근본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그저 낌새 정도니 숨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리온은 하늘 위에서 태어나, 도통 그 아이가 배웠던 것을 알지 못한 기억이 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알고 싶었기에.

 

 

그저 관찰하길 몇 번, 사이에 껴서 작은 일을 배워 본 것이 두어 번, 예술을 주로, 문학은 뜻 깊게, 탄생을 외치던 발견의 옆에서, 그리고 끝내 별의 소리를 듣고 있다.

 

하늘을 관찰하는 것은 참 낭만적이고, 너무나 멀어 기억해 내지 못하는 꿈과 같다.

 

그저 맨눈으로 올려다보던 그때의 너와 달리, 지금의 시간은 제법 발전한 터라, 렌즈 여러 개를 모아 조금 더 선명한 빛을 관찰할 수 있다.

 

 

답지 않게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다 보면 그저 멍하니.

 

 

 

"찾았어."

 

[찾지 않을 거라며.]

 

 

아무도 없는 시간의 밖에서, 수많은 별자리가 수 놓인 천장을 올려다본다.

 

투영기로 만들어낸 가짜 성좌들 사이로 있을 수 없는 푸른 유성의 실체가 떨어졌다.

 

 

"찾지 않았는데, 눈앞에 나타났어."

 

너를 빌미로 간신히 얻어낸 친우는 그저 침묵하다 작게 웃었다.

 

그는 아마 아주 바쁠 것이다.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시간만 때우는 자신과 달랐다.

제가 죽인 푸른 용과도 다르다.

 

바다가 하늘까지 차오르던 그날.

제가 사자를 뺏어가지 않았더라면, 고요히 숨을 죽이던 청룡의 이단이 태양을 물어뜯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억지로 살리려 들지 않았으면, 넌 뜻을 이뤘을 거야."

 

[응. 할 수 있었으니까.]

 

"돌려놔야 할까?"

 

[네 조부를 끌어내린다는 말과 같은데, 여전하네.]

 

 

아무도 들지 않는 망가진 플라네타리움에선 가끔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온, 난 그날 네가···.]

 

[하늘을 속이고자 내가 세운 미숙한 미끼를 죽인 것도, 나의 뜻을 이루게 도울 유리아를 놓아준 것도,]

 

그래서 리온은 가끔,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찾아왔다. 그건 과거에 대한 미련인 건지,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방황인 건지.

 

[싫지 않았어.]

 

 

결국 선택은 내가 아니라 당사자가 해야 함을 알면서도, 누구를 위한 이기심인 걸까.

 

[우린 제법 잘 맞는 사이였잖아.]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 학문을 공부한다는 고등 교육기관이야, 기억해? 얼마 전에 마주쳤거든. 내가 빼앗아 놓고도, 아무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아서 이상해."

 

[너는 기억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늦지 않을 때, 돌아올 곳을 만들어 줄 테니까.]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잖아. 그때도, 지금도."

 

[그럼.]

 

 

 

 

[후회하지 않을 거야?]

 

 

 

 

 

 

 

 

 

 

 

로드리온은 대학생이다.

 

 

그는 돈도 안 된다는 천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횟수를 세자면 열 번도 더 졸업장을 땄을 것이다.

 

신적인 존재가 뭔 우주야,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같은 신이 보더라도 그렇게 말할 테지만, 상관없다. 리온은 원래 별종이었으니까.

 

그저 별이 좋고 하늘이 좋으니 그렇게 살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은 다르다는 걸 좀 알아야 한다. 이상 졸업논문만 열 번 넘게 써본 천문학도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리온이 대학생이라는 말은 축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는 천상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천문학과 엘프니까. 인간은 항상 어느 때나,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의 유명세로 간신히 자금 삭감을 막은 노잼 천문학과 학부생들은 역시나 그를 이용하려 들었다.

천문학과 엘프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거기에 별자리 운세라면, 더더욱 끼워맞춘 것이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건 중요치 않다.

 

 

 

부스 건너편까지 이어진 줄을 응시하던 리온은 그 수많은 인파보다, 더 선명히 보이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별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무시하기도 어려운 소리였다.

 

앞에 놓인 테이블에 가지런히 정리된 타로카드는 옆으로 치우고.

리온은 당연하게 타로를 볼 줄 모르니까.

 

하지만 특별함을 빼앗긴, 이젠 인간이 되어버린 너에 한해선, 볼 줄 아는 게 있다.

 

 

 

"넌 후회했을까?"

 

신나서 앞에 의자를 끌고 앉은 손님이 '네?' 소리를 낸다.

 

리온은 왜인지 소란스러운 별 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린 듯, 설렌 듯 쏟아져 내리는 유성우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샛노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다랗게 늘어선 인파의 줄을 정리하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리온은 눈을 감았다 뜬다.

 

 

그 녹음이 하늘처럼 담기는 순간 울렁이는 것이다.

 

순간, 그 안 불꽃을 마주한다.

 

 

 

 

리온은 별자리를 볼 줄 안다.

 

 

인간은 항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자유를 쫓아 멋대로 살아내지.

 

 

반면 리온은 어떠한가. 한 치 앞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가 아닐지.

 

 

 

 

문득 그 속의 자신이 보였다.

 

 

 

잠이 확 달아난다.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인간은 항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첫 번째 둘은 이젠 알겠지만, 선녀도 남자가 있다는 것이다.

 

선녀는 일종의 직급이다. 옥황 아래에서 대개 사무를 보는 이들인데, 이게 꼭 여성체일 필요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사무직이니까.

 

쓸데없이 핏줄 한번 거창한 로드리온도 거기에 속했다.

 

천상의 직급이란 것은 애초에 이름이 필요치 아니하다. 그러니 그들을 부르는 호칭은 없다.

 

흩어져 사라질 뿐인 음절을 조합해,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건 인간의 특성이라.

신을 명명하는 것 또한,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는 불확실성의 권리였다.

 

아쉬운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불러주지 않는 그의 직급은 그저 깨진 문자와 동일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생각하는 이름, 그 비슷한 걸로 변환이 불가한 존재랄까?

 

 

그래서 중간관리청이 인간계에 있으면 조금 성가시게 되는 편이다.

 


직급 :  � 

 

 

"음, 일단 지상에선 신력으로 서류 처리가 불가해서 서면이 필요하거든요. 깨진 문자처럼 보이시겠지만, 서면상 표기 불가능할 뿐이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천상 쪽으로 올라가면서 직원이 수동 변환 해주실 거에요."

이게 이해했나, 못했나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리온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 이 별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아해하는 중일 것이다. 그는 옥황의 손자라는 뒷배경은 물론, 빨간 줄 그인 전직 반역자이기도 했다. 서기 1년부터 지상을 떠나지 않는 유배자도 또 다른 이명이고.

 

대부분의 추락 선녀(1)와 추락 �은(는) 지상에 채 12년도 남지 않으려 애를 쓴다. 왜 12년이냐면, 12년마다 적어도 한 번, 용의 해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1) 정식 명칭은 아니나,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으로 좌천당한, 자격정지 상태의 선녀를 이르는 말. 

 

선녀와 � 직급의 자격 정지 해제 조건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으뜸이 바로 여의주의 소지였다. 아니, 분명히 하자면 자격 정지 해제 조건이라기보단 더 근본적인, 천계 출입 조건이다.

 

천계 사무직 선녀와 �도, 신의 밑에서 여러 가지 행정을 도맡는 용도, 지금은 사라진 신의 사자도 모두 여의주를 출근 카드마냥 들고 다녔다.

 

아무튼 그래서 추락 선녀와 추락 � , 통칭 추락 선인(※)은 용의 해 동안 승천하는 구렁이의 목을 향해 활을 들곤 한다.

 

(※) 편의를 위한 비표준어

 

 

미리 알리자면 두 번째 둘이 그러하다.

예상했겠지만 '선녀와 나무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다.

사냥꾼은 없고, 활을 든 건 오히려 선녀다. 언제부터 그런 오해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슴도 역시 틀렸고 용이다.

나무꾼? 그런 놈 없었다.

 

 

아무튼 선인 입장에서 지상은 유배지나 다름없으니, 대개 유배 기간이 길어봤자 24년 정도라는 것이다.

 

멀쩡히 입사 준비하는 용의 여의주를 마음대로 뺏어대는 전직 직원이란 거, 너무나도 불합리해 보이지만 별다른 제재는 없다. 지상이든 천계든, 강자를 원하는 건 같으니까.

 

 

별개로, 리온은 여의주보다 사자가 필요한 쪽이었지만.

 

"올해 갑진년인 거 한 번 더 말씀드리면서, 최종 서명 부탁드릴게요."

 

 

거의 삼국시대부터 지상에 머물렀으니 긴 유배가 아닐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스스로도 때려치고 싶었으니 사표 수리 기간?

 

리온은 이제 보지도 않고 서류에 서명한다. 그건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일이다.

 

 

'서기 2024년 2분기 성과보고서'

 

그는 별난 존재다.

 

반역을 꾀했으면서도 소멸당하지 않은 천계의 사람이며, 그 긴 시간 동안 못 찾은 건지, 안 찾은 건지, 평생 사자를 놓치고 있는 죄인이자,

 

음...

큰 상관은 없으나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다.

 

 

역시나 공백의 서류를 힐끔힐끔 내려다보던 관리자가 끝내 도장을 찍었다.

 

 

 

 

 

 

�은(는) 가끔 꿈을 꾼다. 대개 예지몽이다. 그건 일종의 죄에 대한 주의이자, 경고다.

 

그때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리온은 그것이 제법 우습다고 생각했다.

 

죄는 어디에서부터 정의되는가. 모두를 위한 정의가 존재할 수 있는지까지.

 

과연 누군가의 명이 이 끝의 면죄부가 될지.

 

 

 

"처리 완료됐습니다."

 

목소리가 들린 듯 사라진다.

 

리온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뽑았던 책을 다시 꽂아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도서관을 인지한 손목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둘은 '선녀와 나무꾼'의 진실이다.

 

"동양 문학사라 해봤자 그냥 전래동환데 이걸 뭘 더 해석하라는 거야."

 

리온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곤 감자튀김을 앞으로 밀어줬다.

그러면 그 태양 빛의 머리를 쑥 들고 잘만 가져다 먹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학 들을걸."

 

"신학은 재밌어?"

 

"유리아는 음... 재미없어할 듯."

 

교양이 원래 그렇지. 재미있을 만한 과목이면 교양이라 부를까.

 

그것과 별개로 신학은 제법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노아의 방주 같은 거."

 

입을 열어 말하면, 그를 바라봤다 밝게 웃었다.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

 

 

한결같다면, 한결같은 거지.

 

굳이 찾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타나는 거나. 거기에 더해 상상하지도 못한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는 거. 기억하지 못할 거면서, 꼭 다 아는 것마냥 웃는 것까지. 그냥 다.

 

 

"로드리온은 뭔가 아이디어 없어?"

 

그제야 고정된 시선을 돌리면, 지상보단 천계에 어울리는 붉은 눈이 보인다. 꽤 유명한 양궁선수라고 들었다. 어쩌면 지금쯤, 왜 자기가 이 진도 나가지 않는 셋 중 하나여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활을 놓은 지 한참 돼서, 그 굳은살 박인 손을 보면 약간 기분이 이상했다.

 

다시 들게 된다면, 이번엔 누구를 쏘게 될까.

 

 

"없어."

 

"응. 그럴 것 같았어. 하하하. 우리 조 이름 개망조 어때?"

 

끝내 의자 등받이에 몸을 축 늘어트린 체대생이 헛헛 웃으며 중얼인다.

 

"하하하, 개망조. 됐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료조사. 자료조사는 할 수 있지?"

 

 

물론 약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리온은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는 적어도 자기가 선택한 과목은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 짓는 편이었다.

 

 

전래동화의 해석. 전래동화도 아닌 걸 가져와서 해석해야 하는 건 조금 다른 불쾌감이긴 했지만.

 

그래서 두 번째로 그냥 덜 불쾌한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 볼까 한다.

 

노아의 방주는 얼추 진실이긴 했다. 전부 엉망이 된 선녀와 나무꾼과는 다르다. 순서를 바꿔보자. 실제 순서도 노아의 방주가 선녀와 나무꾼보다는 먼저니까.

 

 

그러니까, 두 번째 둘을 '노아의 방주'의 진실로.

 

노아의 방주 이후로도 사람은 죽었다. 12년마다, 한순간의 사고로 수많은 인간이 눈을 감는다.

여의주를 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걸 알지 못한 그 아이는...

 

 

유성우가 내릴 적, 들리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하늘 위의 것으로 태어난 주제에,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아이였다. 옥황의 핏줄이던 그에게 이름을 묻던 그 아이는,

 

"유리아."

 

황금빛 갈기를 가진 신의 사자였다.

 

 

 

 

 

 

 

 

 

 

 

 

 

"별에선 소리가 나니까."

 

"뭐?"

 

리온은 눈가를 좁힌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표정에 유리아는 그저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진짜야. 흠, 뭔가 엄청 조심하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

 

유리아는 별종이다. 뭐, 이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 애초에 그에게 멋대로 반말하는 것부터 그랬다.

 

그래서 궁금했다. 저는 걸을 수 없는 길을 걷는 자여서, 함께하고 싶었다.

 

"조심할 일을 안 하면 되잖아."

 

"응. 그런 걱정하는 소리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바라보면 금세 일어서곤 그러는 것이다.

 

"걱정마. 내가 다, 지킬 수 있어."

 

거짓말.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붙잡았다면, 너는 붙잡혔을까?

 

뻔하지만 답을 알고 있었다.

 

 

신의 사자인 너는 항상 수많은 인간을 지키러 지상에 발을 붙였다. 옥황이 명하는 대로 생명을 지켜냈다.

무엇이 죄인가. 어쩌면 너도 계속 경고하는 꿈을 꿨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가야 해."

 

 

 

 

 

 

 

 

 

 

 

 

 

 

 

 

 

 

 

 

 

 

 

 

 

유리아는 인간의 손에 자랐다.

 

삼신도 가끔은 실수할 때가 있어서, 햇볕 같은 아이를 떨어뜨리곤 한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건 인간의 고유물이라기보단, 유리아를 깊이 사랑한 개인의 마음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는 사랑받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품는다. 유리아가 그랬다.

 

유리아를 키운 나이 든 인간은, 항상 별난 유리아를 품에 안고 지켰다.

 

그녀의 귀를 막고 대신 소리쳤다. 그리곤 그 높던 동산을 올라 작은 집 한켠에 그녀를 눕혔다. 따스한 손바닥이 조곤조곤 포근하게 내려앉으면, 그날은 무언가 아주 부드러운 꿈을 베어 무는 것만 같았다.

 

 

사랑을 배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터무니 없이 달큰한 일이다.

 

작고 주름진 손으로도 커다란 씨앗을 지켜낼 수 있다는 힘을 안다.

 

사랑할 수 있기에, 지켜내고 싶었다. 그게 사랑임을 안다.

 

 

뒤늦게 돌아가게 된 하늘은 보다 무심했다.

 

인간을 아낀다고 말하지만, 그건 뭐랄까. 언제든 다룰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한 관대일까.

그래서 유리아는 항상 뒤돌아볼 줄 알아야 했다.

 

뒤처지는 이들을 껴안고 걷는 것 또한 그녀의 일이었으리라.

 

 

그는 꼭 앞에 서 있으면서 뒤처진 자처럼 굴었다. 관대할 줄 모르면서, 끝끝내 내치지는 못했지.

별난 그 아이가 꼭, 별났던 자신 같아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마주한 건 무엇이었더라.

 

그건 호기심이 문제라고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닌 걸 알아.

 

무지에서 오는 순수의 빛을 '여의주'라 부르던 당신들은, 결국 생명의 근원으로 생명을 몰아넣는다.

 

 

바다가 들어찼다. 그것이 누구의 뜻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르고 골라져 신의 배 위에 오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공포와 비명, 별의 소리가 들릴 때면.

 

 

"돌아올게. 네 뒤로."

 

"유리아,"

 

차마 네가 나를 붙잡지 못한 것을 안다.

 

 

 

 

 

 

 

 

 

 

 

 

 

 

세 번째 둘도 이젠 알겠지.

 

 

"이거 그림 귀엽다."

 

얇은 동화책을 들고 팔랑팔랑 넘기며 구경하는 전직 사자를 바라본다.

 

책 표지엔 과하게 베일을 두른 여성과, 멍청한 표정의 남자가 그려져 있다.

 

리온은 그 시절, 저딴 비단은 걸친 적도 없다. 여성이었던 적도 없다.

 

"여러 전개가 있다고 들었어. 대충 이 정도 읽고 비교해서 정리해."

 

그러한 갖가지 거짓들을 앞에 놔주니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응!"

 

 

일단 리온은 대학생이다. 대학생이라는 말은 과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왠지 환멸 났으나, 적어도 악의 없는 둘에게 화까지 내고 싶진 않아 보이는 조장을 보내고 난 뒤, 그나마 맡겨준 자료조사를 망치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망치는 게 더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대학 졸업장만 열 장이 넘는데.

 

정리해 놓아도 제가 알아서 고쳐 보낼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와중에 경호학과라니, 참 본인 같으면서도.

 

유리아는 하늘 위에서 소멸시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걸 알까.

 

 

그래서 내가,

용의 이빨 아래, 네가 삼켜지기 전에.

너의 그 모든 자격과 기억을 바닷물에 버리고, 명만 고이 주워 배 위로 올렸다는 것을.

 

지금 너를 벌하라 쫓아낸 것처럼,

너는 나의 손으로 모든 것을 잃었으니, 우리는 어쩌면 적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는 원망치 않을 것이다.

 

새까만 바다를 삼키고 삼켜내 지키고 싶은 숨을 주인에게 돌려주었을 테니.

 

 

오랜 기간 마주 보고 묻고 싶었다. 나는 결국 하늘 위에서 자라, 배우지 못한 것이 많다.

 

그래서 도리어 만나지 않았으면 했다.

 

 

 

탁, 책을 닫은 네가 밝은 낯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 내일 너네 과 부스 관리야."

 

 

나는 너를 지키지 못해, 비를 내리는 푸른 것의 눈을 쐈다.

너의 뜻도, 또 다른 친우의 뜻도 망쳐 버린 채.

그저 그것이 나의 죄라, 하늘에 맞서 바다를 움켜쥐었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너는 누군가 너를 걱정할 때면, 별의 소리가 들린다고 하였으나. 난 왜 이리 그것이 꿈처럼 경고의 의미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너의 따스한 온도가 아니라서 그런가.

 

 

선녀와 나무꾼의 진실은 크게 별거 없다.

 

심한 각색 여부가 아니라,

선녀가 아닌 선녀에게 필요한 건 날개옷이 아니란 점.

 

하지만 누군가 물어봤는가?

 

선녀가 아닌 선녀는 과연 돌아가고 싶은지.

 

 

"알고 있어."

 

대신 나는 네게 내일 물어야지.

 

오히려 후회하지 않도록, 네가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으니까.

 

분명 너를 최대한 따스히 감싸 배 위로, 인간의 품으로 돌려주었는데 왜.

 

 

 

 

대신 네가 묻는 거 있지.

 

"너, 내가 보고 싶었지."

 

 

"날 엄청 보잖아."

 

 

 

 

 

 

 

 

 

 

 

 

 

용의 해는 대체로 위험하다.

 

지금까지의 사실을 조합하면, 그해에는 수많은 인간이 여의주를 위해 소실된다. 그건 대부분 아주 참혹한 사고로 그려졌다. 처음 여의주를 탐했던 날이, 홍수라 알려지는 것처럼.

 

하늘의 것들은 하나같이 날 선 욕망을 드러내면서 그것을 규율인 듯 포장하고 숨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건 소수의 일이고, 강인한 너는 평생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리온은 꿈꿨던 날처럼 의자 위에서 일어섰다.

 

일상을 떠드는 밝은 목소리들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쭉 늘어선 줄과, 질끈 묶은 태양 빛 머리카락.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리온은 왜인지 소란스러운 별 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린 듯, 설렌 듯 쏟아져 내리는 유성우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의 직속 상사가 그를 향해 경고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네가 항상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몰라.

 

"유리아."

 

소리 내 부르면 돌아볼 걸 알아.

 

 

날 비추는 눈이 더없이 맑아서,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의 굉음이 땅을 울린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로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온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면.

 

 

 

무너지는 부스와 매캐한 연기와 사이렌 소리. 불이 번지는 속에서.

이번만큼은 너를 붙잡아서.

 

 

 

 

 

 

 

 

 

 

 

 

 

 

 

 

 

 

 

꼭 나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묻지.

 

"왜 다시 나를 찾아왔어?"

 

근데 이상한 건,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거야.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볼 수밖에 없었지. 그냥 난 나조차 모르는 대답을 해.

 

"···모르겠어."

 

그럼 너는 처음으로 옅게 웃으면서 그러는 거 있지.

 

"나한테 약속해서 그래. 돌아온다고."

 

 

 

 

 

 

 

 

리온은 어쩔 수 없이 사자를 쏘지 못해서.

결국 이번엔 불길로 뛰어들려는 너를 차마 그때처럼 구하지 못해서.

 

 

자격과 기억을, 사자(使者)가 아닌 사자(獅子)를.

아니, 어쩌면 그것도 아닐 별의 소리를.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구하러 갈 네게, 너 혼자서라도 살아남길 바랐던 나의 오만을 버리고.

 

"돌려줄게."

 

 

이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임을 기억해.

 

"하늘이 올 거야. 용이 오르는 해에, 용도, 그자들도 모두 '여의주'가 필요하니까."

 

동시에 시작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까, 보내줄게."

 

 

 

빼앗았던 것을 돌려준 채 떨어져 나가는 손을 보다가, 이번엔 반대로 제가 붙잡는다.

 

유리아는 원망치 않았다.

 

"같이 가자."

 

이젠 방법을 알기 때문이지.

 

"약속보다도,"

 

 

나는 너를 수만 가지의 이름으로 부를 줄 안다.

 

"네가 보고 싶었어."

 

 

 

 

 

 

 

 

 

 

거짓말처럼 간단한 얘기다.

 

 

흩어져 사라질 뿐인 음절을 조합해,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건 인간의, 그리고 뒤늦게 내가 배워 버린 덧없는 버릇이라.

 

감정을 정의 내리는 것 또한, 오로지 자신만이 가지는 불확실성의 권리.

 

빛을 받아 반짝이는 사자의 손을 끌어 잡는다.

 

도통 말 듣지 않는 �의 작별인사불효는 끓어 넘치는 바다든, 바싹 마른 사막을 불러내겠지.

하지만 그래도 좋아. 너는 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이걸 이제서야,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거짓말이어도 좋았다.

 

 

 

 

 

 

이건 갑진(甲辰)년의 사자(使者), 를 쏘지 않은 사냥꾼이자 나의 설화.

어떤 영웅 전기의 초라한 프리퀄.

 

 

 

 

 

 

선녀니까 선남 어때?

...굳이? 그런 거 필요 없어.

하지만 인간들은 원래 지어 부르는 거 좋아해.

 

이게 싫으면, 이렇게 부르자.

 

" ━ "

 

- 甲辰 傳 -

 

 

 

 

 

 

 

 

 

 

 

 

P.S.

 

아니 들어봐 오늘 진짜 진짜 이상해

나 활 잃어버렸어

아니지 잃어버린 적 없는데 그냥 사라졌어 아니 분명 락커에 넣어뒀는데 왜? 잠금장치도 제대로 걸려있었는데 왜?

진짜 안 그렇다 치고 싶은데 이건 그렇다 쳐

아니 진짜 그지발닦개같은

조별 과제 셋이 하는데 나 빼고 둘이 저번 축제 사고 뒤로 안 나옴

혹시 다쳤나 했는데 그냥 한순간에 사라졌대

CCTV에 불난 건물로 들어가는 건 찍혀있는데 나가는 것도 없고 사상자도 0명이야

화재 완전 초기 진압됐잖아!! 귀신이야 뭐야?!

네? 가비, 일단 제가 갈게요 어디예요?

근데... 저번에 조별 과제, 학생 수가 안 맞아서 가비만 혼자서 하게 됐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어?

에?

그렇네 나 왜 저렇게 썼지

???? 꿈꿨나?

 

 

comment